본문 바로가기
경제학

주요 경제학자 알아보기

by 나비효과 이루리 2024. 12. 4.
반응형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나옵니다. 오늘은 주요 경제학자 3명을 알아보겠습니다.

 

1. 애덤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입니다. 후대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국부론"의 저자입니다. 고전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스미스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자본주의의 자유무역에 대한 이론적 심화를 제공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피페의 커크칼디의 세무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출신일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1723년 1월 14일 커크칼디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애덤의 부친은 스미스가 세례 받기 약 6개월 전에 사망했습니다. 4살 경에 일단의 집시들에게 납치되었지만 삼촌에 의해서 구출되어 모친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스미스의 전기 작가인 존 레이는 장난스럽게 애덤 스미스는 별로 쓸 만한 집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첨부합니다. 스미스의 부친은 연합조약의 영향으로 스코틀랜드 해안에 밀수가 급증한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거짓됨의 참람함을 깨닫고 정부의 법과 규칙을 강화하는 방법 즉, 관세보호 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국부론’을 쓰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또한 1759년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된 '도덕 감정론'을 발표했습니다. 1764년부터 귀족인 타운젠트의 아들을 데리고 가정교사를 하며 유럽여행을 시작합니다. 2년에 걸쳐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며 여러 나라의 행정조직을 시찰하고 중농주의 사상가들과 접촉을 통해 이들의 사상과 이론을 흡수합니다. 귀국 후 저술활동에 전념하여 1776년 유명한 '국부론'을 발표하여, 국가가 여러 경제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 경쟁 상태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발전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책은 경제학 사상 최초의 체계적 저서로 그 후의 여러 학설의 바탕이 된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1778년 스코틀랜드의 관세 위원이 되고, 1787년 글래스고 대학 학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영국 정통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윤리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2. 데이비드 리카도: 노동 가치설 정교화,비교 우위설 창시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국의 경제학자 입니다. 영국 고전파의 이론체계를 완성했으며 애덤 스미스와 함께 그 대표자입니다. 스파라드 유대인으로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 연구에 뜻을 두어 경제학과 지연 과학 연구에 전념하였습니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런던 증권거래소의 중개인이어서 리카도는 아버지로부터 증권거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21세에 그는 퀘이커교도인 프리실라 월킨스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결별하고 결국 유니테리언주의로 종교를 전향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 이후로 그와 절교하였습니다. 1809년 통화 문제에 관한 "금의 가격"과 "떨어진 곡물값이 자본 이윤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1817년 "경제학 및 관세의 원리"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방법론을 체계화하고 이론 경제학자로서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이어 지대론을 기초하여 노동 가치설, 차액 지대론 등 분배의 여러 법칙을 밝혔으며, 그 밖에도 잉여 가치론, 이윤율 저하 이론, 국제 무역 이론 쳬계를 완성함으로써 후세의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스미스의 절대 우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교 우위론을 발표했습니다. 1819년 이후 종신 하원 의원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는 맬서스와 친한 친구였으며 유서에 있던 3인의 제산 상속인에도 포함시켰습니다.

 

3.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가, 혁명적 사회주의자,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 이론가, 언론인 입니다. 트리어 출신이며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습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 년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런던에서는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에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의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습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납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입니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대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 먹힙니다. 소위 사적 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경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 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입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 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합니다.

 

반응형